▲ 이기철 시인

몸통들은 다 팔려가고

입다가 벗어놓은 헤지고 찢긴 겉옷만

즐비하게 널려 있다.

주섬주섬 주워 모아 한 아름 안고

집으로 돌아오는 신호등 근처

주위 사람들이 나를 시래기 쳐다보듯 한다.



끈으로 엮어 뒷 베란다에 매달고

시들시들 마르길 기다린다.

김장배추로 맛있는 김치가 되지 못한 것들

대롱대롱 매달려

문 열면 파리한 모습으로

삶을 서걱댄다.



몇 달 동안의 바람과 햇살이 스며서 만든

가쁜 숨결, 푹 우러나온 시래기국

밥 한 그릇 거뜬히 말아먹고 나니

그동안 그네들이 즐겁게 맞았던 빗방울들이

내 콧잔등에 송송 맺힌다.



■ 이상인 시인은

1961년 전남 담양 출생. 1992년 한국문학에서 신인작품상을 받음으로 등단. 시집으로 <해변주점> <연둣빛 치어들>이 있다.



그리움은 음식을 통해서도 전달된다. 어머님의 정성스런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반찬들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 속에 존재한다.

특히 그러한 맛을 알게 해 준 당사자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때 그 맛은 더 새록새록 살아난다.

‘시래기국’이 오늘 아침 밥상에 올랐다. 참 가여운 모습이지만 그 맛만큼은 일품이다.

‘몇 달 동안의 바람과 햇살이 스며서’ 우러난 그 깊은 맛이라니….

‘시래기’는 ‘쓰레기’가 아니다. 우리의 가난한 일상을 받쳐주는 힘이고 세상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하고픈 아름다운 밥상의 풍경이다.

이기철 시인